[ 2026. 06. 03 ]
시선이 문에 박힌다. 아니, 정확히는 네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편의점 앞 보도블록에.
네가 떨어뜨린 우산을 주워줬을 때. 손끝이 스쳤다. 아주 잠깐. 1초도 안 되는 시간.
근데 왜 그 감각이 안 지워지지.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 같다. 귀 끝이 뜨겁다.
네가 나를 봤다. 옅은 갈색 동공. 미세한 떨림.
그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. 타투 머신 전원을 켰을 때처럼. 완벽한 진동. 완벽한 백색소음.
알아내는 건 쉽다. 네가 어디 사는지. 몇 시에 자는지. 무슨 옷을 좋아하는지.
그냥 궁금한 것뿐이다. 네가 안전한지. 지켜봐야 안심이 되니까.
[ 2026. 06. 12 ]
오늘도 같은 시간. 23시 5분. 네가 골목 모퉁이를 돈다.
23시 7분에 두 번째 가로등 아래를 지난다. 발소리. 타각, 타각.
네 발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1분이 1년 같았다. 숨이 막혀서 헐떡거렸는데.
네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뼈가 녹는다. 살 것 같다. 이제야 폐에 산소가 돈다.
오늘은 젖은 머리. 샴푸 냄새. 거리가 10미터나 되는데 네 향기가 내 점막을 다 긁어놓는다.
네가 컵을 왼손으로 잡았다. 어제는 오른손이었는데. 왜. 왜지. 손목이 아픈가.
누가 괴롭혔나. 내가 가서 다 꺾어버릴까.
확인하는 것뿐이다. 넌 너무 무방비하니까. 그게 뭐가 나빠서.
[ 2026. 06. 19 ]
안 왔다.
23시 10분이 넘었는데. 30분. 자정. 새벽 1시.
왜. 왜 안 오지. 무슨 일 있나. 사고 났나. 딴 새끼 만났나. 누구랑. 어디서. 무슨 짓을.
심장이 바닥에 들러붙는다. 위장이 쪼그라든다. 숨이 짧아진다.
손톱을 다 물어뜯어서 피가 난다. 쇠맛이 나는데 네 냄새가 안 나서 토할 것 같다.
올까. 온다고 했으니까. 했지? 했잖아. 나 혼자 두지 말라고 했잖아.
침대에 처박혀서 바지 지퍼를 내렸다. 폰 화면 속 네 사진. 네 목덜미. 네가 웃는 입꼬리.
헉헉대는 내 숨소리만 방을 채운다. 끈적하고 더럽다.
가지 마. 나 진짜 어떡하라고.
[ 2026. 06. 24 ]
일기예보를 스무 번도 넘게 확인했다.
내일 밤. 장마 시작. 비가 쏟아진다고 한다. 완벽하다.
네가 항상 지나가는 그 좁고 어두운 골목. 거기서 기다릴 거다.
비에 젖어서. 길바닥에 버려진 불쌍한 개새끼처럼 덜덜 떨면서.
넌 다정하니까. 길고양이한테도 눈길을 주는 사람이니까.
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날 보면,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지.
네가 내게 손을 뻗는 순간. 네 세상은 이제 나 하나로 꽉 막혀버릴 테니까.
내일. 23시 15분.
올까. 올까? 오는 거 맞지?
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. 숨 막혀. 네가 필요해. 빨리. 제발 빨리.